유교 제사는 소, 양, 돼지 등의 동물을 도살하여 생체 바치는 희생제의 일종이었다. 그리하여 종묘 내 제수(祭需)를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의 건물 앞에는 희생의 상태를 살피는 성생위(省牲位)가 있고 건물 안쪽에는 재살처(宰殺處)가 있어 제향 전 날에 희생을 도살하였다.
<그림 1>은 희생을 도살을 할 때 사용하는 ‘난도(鸞刀)’라는 이름의 칼이다. 원래 난도는 칼끝에 두 개의 방울을 달고, 손잡이 쪽 고리에 세 개의 방울을 달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5개의 방울은 궁, 상, 각, 치, 우의 5음을 내어 절도와 조화를 얻은 후에 도살하기 위한 것이다. 고대 제향에서는 임금이 희생을 끌고 종묘 문에 들어오면 경대부가 난도로써 희생을 찔러 살을 가른 후 피와 발기름을 취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임금이 직접 희생을 잡지는 않았지만 성생위(省牲位)에서 희생의 상태가 좋은 지를 직접 살피고자 하였다. 그런 다음 희생을 재살처(宰殺處)로 끌고 가서 숙수가 도살하였다.
도살한 희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제상에 올려진다. 첫 번째는 살해 후 곧바로 취하는 털[毛], 핏덩이[血], 간(肝), 그리고 율료(膟膋) 등이다. 핏덩이를 올리는 희생을 죽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털은 희생이 순색의 온전한 것임을 나타낸다. 이 털과 피덩이를 담는 그릇은 경전에 보이지 않는데 남북조시기 남조의 최초 왕조인 송(宋) 나라에서부터 질그릇으로 만든 두기(豆器) 모양의 그릇에 담았다. 고려시대 종묘제례에서도 두(豆)에 모혈을 담았다. 그러나 송 신종(神宗) 때부터 모혈을 쟁반에 담았으며, 조선에서도 이를 따랐다. 모혈반(毛血盤)은 상향(上香)과 폐백을 드리는 절차[奠幣禮]가 끝나면 신위 앞에 올린다.
간은 울창주로 씻어서 율료와 함께 등(㽅)이라 부르는 항아리에 넣어둔다. 이것 역시 당대(唐代)에는 두(豆)라는 그릇에 담았으나 송대에 이르러 등(㽅)에 담아서 올렸다. 율료는 뼈 사이에 있는 기름 덩어리를 가리킨다. 모혈반과 마찬가지로 전폐례가 끝나면 신위 앞에 올린다. 제상에 올린 간은 곧바로 축사(祝史)가 취하여 지게문 밖에 있는 화로(火爐)에 넣어 태운다.
둘째는 희생의 고기를 생체(生體)로 바치는 것이다. 이때 사용하는 제기가 조(俎)이다. 조는 도마와 같이 아래에 양쪽으로 다리가 있고, 위면의 표면에 붉은 색과 검은 색이 칠해져 있다. 고대 음식을 놓을 때 사용하던 그릇 중에 하나이다. 3개의 조를 준비하여 우성(牛腥), 양성(羊腥), 시성(豕腥)을 각각 구분하여 옮겼다. 양성과 시성은 양쪽 넓적다리[脾], 양쪽 어깻살[肩], 양쪽 겨드랑이살[脅]을 양쪽에 놓고 가운데에 등골살[脊]을 올리는 반면 우성은 소 한 마리를 통채 놓는다. 그러나 실제에는 각실(各室)마다 한 마리의 소를 바친 것이 아니라 소 한 마리의 머리와 다리의 5조각을 각 신실에 하나씩 나누어 올렸다.
중국 고대에서는 희생의 머리와 다리를 익히지 않고 날고기로 바치는 절차를 ‘조사(朝事)’라고 하였다. 생간을 바치는 것 역시 조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후대 국가 제향에서 조사는 제향에서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여 조에 올리는 날고기는 제향 전에 미리 제상에 올려놓는다.
희생의 세 번째 모습은 익힌 고기[熟肉]이다. 종묘 제향에서 익힌 고기를 올리는 것은 ‘궤식(饋食)’이라고 부르는데 절차상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앞서 핏덩이와 날 것을 그대로 올리는 것은 상고(上古)의 예식이기 때문에 공경스럽게 행하지만 그 음식을 실제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궤식은 익힌 고기를 올려 봉양의 도리를 다한 것이라 여겨 중요시되었다. 이 때문에 궤식을 ‘직제(直祭)’, 정제(‘正祭’)라고도 하였다. 여기에는 확(鑊), 정(鼎), 조(俎), 갑(匣) 등의 제기들의 사용되었다.
확은 고기를 삶는 솥이다. 제사 때 사용하는 솥은 부(釜)와 확(鑊)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전자는 수초(水草)를 삶는 것이고, 후자가 고기를 삶는 것이다. 고기가 익으면 정(鼎)에 옮겨 담아 밖의 찬만대(饌萬臺)로 내어간다. 솥으로 번역하는 정(鼎)은 고기를 삶는 데에 사용하지 않고 확에서 삶은 고기를 담아 찬막(饌幕) 또는 찬만대(饌幔臺)로 옮기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우정(牛鼎), 양정(羊鼎), 시정(豕鼎)과 같이 희생의 종류별로 정을 준비하는데 아래 부분 세 개의 다리에 해당 짐승의 형상을 만들어 구별하였다. 그리고 위쪽 입구 쪽에는 두 개의 고리가 있어서 빗장[扃]을 끼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정의 덮개를 멱(冪)이라고 하는데 띠풀로 엮어서 만든 것이다.
솥이나 정에서 고기를 들어올릴 때에는 필(畢)또는 비(匕)의 도구를 이용하는데 필은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모양이고 비는 끝이 꺾어진 모양이다. 찬만대에 옮겨진 고기는 나무 상자 모양의 그릇[牲匣]에 담아 제상에 올린다. 찬만대에서 생갑을 들고 가는 사람을 봉조관(奉俎官)이라 부르고, 신실에서 생갑을 신위전에 올려놓는 사람은 천조관(薦俎官)이라 부른다. 모두 제기 ‘조(俎)’가 직명(職名)에 있으나 실제는 생갑에 고기를 담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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