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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제사5

신을 위한 음식의 봉헌 : 혈식·소식·상식 음식을 통한 조상과의 만남.. 장소 따라 제사 메뉴 달라져 ‘먹방’이란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예전에 비해 음식에 대한 프로그램이 다양해져 만드는 것뿐 아니라 직접 먹는 모습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듯 맛을 전달한다. 그 많은 음식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한다. 매일 가족에게 무엇을 먹일까를, 점심 때 직장 동료들과 어느 식당으로 갈지를 생각한다. 누구와의 만남엔 음식이 끼어있기 마련이다. 스쳐가는 사람에게도 밥 한번 같이 먹자고 약속 아닌 약속을 하면서 헤어진다. 음식을 매개로 한 만남은 죽음 이후에도 이어진다. 제사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이 제사에 대한 추억을 제상의 제물(祭物)을 통해 떠올리듯 제사는 음식과 밀접하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제상의 음식은 더욱더 돋보였다. 음식의 향내는 신.. 2020. 8. 10.
조선시대 태(胎)와 땅, 그리고 돌의 문화 명종대왕 태실(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소재) “태어날 때 자신의 신을 가지고 나온다”고 해야 할까? 국립고궁박물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공동주최하는 “조선 왕실 아기씨의 탄생”(2018.6.27.~9.2)이란 전시를 준비하면서 느낀 결론이었다. 조선시대 왕의 자녀가 태어나면 아기를 따라 나온 태를 왕실에서 보관했다가 3일째 되는 날 100번씩이나 깨끗이 씻은 후 준비한 항아리에 넣고 봉하였다. 항아리는 크기가 서로 다른 두 개를 준비하는데 작은 항아리 바닥에 중국 동전 한 닢을 놓고 그 위에 태를 놓았다. 입구를 막고 뚜껑을 닫은 후 이를 큰 항아리에 넣고 항아리 사이에 솜을 넣어 고정시킨 다음 뚜껑을 닫고 끈으로 묶었다. 그리고 길한 날을 잡아 태항아리를 길지(吉地)에 묻었다. 이를 태실(胎室)이라 부르고.. 2018. 9. 8.
함흥본궁 함경도 남쪽 해안에 위치한 함흥은 조선시대에 왕조의 발상지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선조는 신라 말기부터 전주에 살았던 토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태조에게 고조가 되는 목조 이안사(李安社)는 지방관과의 불화로 전주를 떠나 삼척을 거쳐 함경도 경흥(慶興)의 알동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태조의 증조부인 익조 이행리(李行里)가 토착 세력의 위협을 피해 함흥의 귀주동에 정착하였다. 태조는 외가인 영흥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함흥의 귀주동에 돌아와 살았다. 이곳에서 정종과 태종이 태어났다. 이후 태조는 함흥의 남쪽 지역인 운전사로 거처를 옮겨 살았는 데 조선 건국 후에 이곳에 본궁(本宮)을 설치하였다. 본궁은 국왕이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살던 옛집을 가리킨다. 위 .. 2016. 5. 1.
문소전과 상식(常食) 문소전은 애초 태조비(太祖妃)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초상화를 봉안하고 제향을 거행하였던 진전(眞殿)이었다. 당시 진전의 건물 이름은 인소전(仁昭殿)이었는데 태조 사후 그의 혼전으로 사용되면서 문소전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종묘에 태조의 신주를 옮긴 후에는 이곳에 태조의 초상화를 모시고 원묘로 삼았다. 한편, 1420년(세종 2)에 승하한 태종비 원경왕후(元敬王后)의 혼전(魂殿)이었던 광효전(廣孝殿)도 태종 사후에 그의 혼전으로 사용되었다가 부묘 후 원묘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초상화를 모셨던 문소전과 달리 광효전은 위판(位版)을 봉안하였다. 원묘는 종묘 외에 건립된 왕 또는 왕후의 사당을 가리킨다. 고려시대에는 종묘 외에도 왕의 초상화를 모신 사당이 여러 곳에 있었다. 조선 초기 태조의 문소전은 고.. 2016.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