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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사6

조선시대 흑우(黑牛)에 관하여 조선시대 국가 제사에 사용된 희생으로는 소, 양, 돼지가 있으며 이 중에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에 사용되었던 흑우(黑牛)가 가장 중요시되었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중앙 정부에 진상하였던 흑우(黑牛)의 현황과 관리, 그리고 제향 중 진설(陳設) 등을 고찰하였다. 먼저 조선후기로 갈수록 줄어들거나 폐지되는 다른 진상품과 달리 흑우의 진상은 그 수효가 늘었는데 그 원인을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5대의 선왕을 모신 오묘제(五廟制)로 시작한 종묘는 후대에 갈수록 제사 대상이 증가함에 따라 더 많은 흑우가 필요하였다. 이는 세대(世代)의 자연적인 증가만이 아니라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늘어난 결과였다. 제주에 부가된 흑우의 수가 늘어난 또 다른 요인은 국왕의 친행(親行) 기우제 때문이었다. 한.. 2020. 10. 5.
사찰 내 유교 제사 : 표충사 아주 오래 전에 나는 신문에서 "유자와 승려가 같이 지내는 제사"로 밀양 표충사를 소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후 7, 8년 전인가 해남 대흥사에 템플스테이에 갔다 사찰 경내 있는 표충사를 보았다. 사찰에 있는 유교식 사당이 존재하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언제가 한번 연구해 봐야지라는 생각만 하고 지나쳤는데 올해 해남 표충사 제향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어제 학술대회 발표는 무사히 마쳤지만 아직 연구해야 할 부분은 많다. 많은 과제를 차후로 미루며 조금이나마 정리하고자 한다. 해남 대둔산 대흥사에는 표충사(表忠祠)는 휴정(休靜)을 주향(主享)으로 하고 유정(惟政) 처영(處英)을 배향한 사당이다. 사찰의 많은 전각 중에서 ‘전(殿)’이나 ‘당(堂)’ 외에 ‘사(祠)’라는 이름의 .. 2019. 9. 22.
새해 사직단에서 한 해의 농사를 빌다 한 해의 시작이 우리에게 주는 최대의 선물은 희망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생활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새해가 오면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계획을 세우고 들뜬 마음에 정동진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개인의 삶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전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직장에서의 시무식이나 설날의 세배와 성묘, 정월대보름에 볼 수 있는 다양한 마을축제 등은 이러한 바람의 구체적인 표현들이다. 조선시대에도 신년이 되면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의례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기곡제(祈穀祭)’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곡제는 한 해의 농사가 잘 되길 비는 의식이다. 조선시대 농경은 삶의 기반이면서 문화이며, 종교이다. 유교의 제천 의례가 우리나라에 수용된 것은 고려 성종대인.. 2016. 2. 13.
대한제국과 환구단 서울시 시청 앞 광장에서 명동으로 넘어가는 소공동길의 조선호텔 옆에는 주변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팔각 지붕의 삼층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1897년 대한제국이 성립하면서 새로 세운 환구단(圜丘壇)의 부속 건물로 황천상제(皇天上帝), 황지기(皇地祇), 태조(太祖)의 신위를 보관하던 황궁우(皇穹宇)이다. 하늘에 제사지내던 환구단은 일제에 의해 1913년에 헐리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이 들어섰다가, 해방 후 조선호텔로 이어졌다. 성스러운 금기의 장소가 이방인들의 잠자리로 변해버린 이 역사의 현장은 개항 이후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잘 대변하고있다. 아래 사진은 1900년대 소공동 모습을 원거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현재 건물에 싸여 그 높이를 알 수 없는 소공동 지역이 사진에는 사방에서 바라볼 수 있는 높.. 2008.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