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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시평9

범 내려 온다 우리의 새해는 동물의 왕국이다. 간지(干支)로 해를 계수하였던 우리는 12지지(地支)를 상징하는 12 동물을 통해서 한 해를 맞이하고 보낸다. 나는 띠로써 특정 동물과 연결되고, 그 동물은 같은 띠 사람을 친밀하게 연결시킨다. 최근엔 이 동물의 순환이 점점 빨라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흰 소는 언제 어디로 간거지? 이렇게 빨리 갈 거면 정(情) 주지 말 걸, 호랑이가 언제 내려왔지? 이런 푸념으로 또 한 해를 시작한다. 동물원에서 보던 호랑이를 학문의 여정에서 가끔 만났다. 첫 번째 만남은 기우제(祈雨祭)였다. 조선시대 기우제의 주인공은 용(龍)이지만 호랑이 역시 조역자로 모습을 나타냈다. 숙종대 정해진 12차례의 기우제 중 제6차에 해당하는 것이 침호두(沈虎頭)이다. 침호두는 이름 그대로 호랑이 .. 2022. 2. 20.
소의 해, 신축년 2020년을 맞이하여 어릴 때 미술 시간에 사용하였던 크레파스에는 ‘살색’이 있었다. 그땐 사람들의 살색이 모두 그 색인 줄 알았다. 깜상이란 별명에도 불구하고 나의 얼굴을 그릴 때엔 그 ‘살색’을 칠하였다. 황인종의 피부색을 가리키던 ‘살색’은 인종차별적이라 하여 연주황색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살구색이라 부른다. 누군가 붉은색 살구를 만들어 낸다면 어떻게 될까? 무슨 색이든 이를 바라보는 우리는 사회적 학습과 경험 속에서 이를 판단하고 명명한다. 2021년 신축년을 맞이하여 또 하나의 색깔을 생각해본다. ‘한우’라 말을 들으면 ‘황우(黃牛)’가 생각난다. 젖소와 황우만 알던 시기 얼룩소는 젖소였고 서양 소였던 반면 한우는 황우로만 여겼다. 그런데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얼룩소가 칡소를 가리킨다는 것, 그리고 한우에는 황우,.. 2021. 2. 5.
마마의 신비와 공덕 같이 있어 미운정이라도 든 것일까? 조선시대에는 천연두에 걸렸다가 나으면 마마신을 보내는 굿을 하였다. 아픔을 가져오고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게 한 병이 떠나간다고 굿을 열었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했을까? 제발 뒤돌아보지 말고 말없이 가시라는 마지막 간절함으로 이해해야 할까. 사대부 중에도 굿판을 외면하면서도 ‘송두신문(送痘神文)’이라는 글을 지어 마마신을 직접 전송한 자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마마신은 어떤 ‘신(神)’일까? 보통 유자(儒子)에게 ‘신’이란 선한 존재들이다. 귀신을 음양의 조화로 이해하는 신유학에서 귀신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기(氣)의 신비한 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제에서 본다면 사람을 아프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마마를 신이라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을 .. 2020. 7. 26.
전염병을 피하여 거처를 옮기다 1623년에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전염병이 걸린 아내와 자식을 집에 두고 어머니만을 모시고 다른 마을로 피신하였다. 그때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처자식 소식은 매우 걱정이 되고(妻孥消息堪疑惧) / 친구들 서신은 끊어져 적막하구나(親舊音書斷寂寥)/담장 틈으로 매양 약만 넣어줄 뿐이니(墻隙每令投藥物)/집안에는 땔나무나 있는지 늘 염려되네(家間長念絶薪樵)” (이응희 지음, 이상학 역, 󰡔옥담유고(玉潭遺稿)󰡕, 소명출판, 2009,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 DB 참조) 염병에 걸려 격리된자 자와 이를 피하여 다른 지역으로 옮긴 자, 그 사이 담장의 틈이 가족이란 관계 속에서 애잔함을 전한다. 병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옮겨 머무는 것을 피우(避寓) 또는 피접(避接)이라.. 2020.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