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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사/환구단

대보단

by 갈뫼길 2007. 7. 1.


대보단은 임난 때 조선에 원병을 파견하였던 신종 황제를 모신 제단이었다. 조선에서 명나라 황제를 제사지내는 것은 당시 유교 이념에서 볼 때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청나라와의 외교적 관계에서 볼 때에도 매우 위험한 정치적 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사를 국가에서 거행한 것은 당대 정치인들에게 매우 절실한 사업으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준다. 정권의 중심에 있었던 노론은 대보단의 건립을 통해 그들의 종주인 송시열의 북벌론과 만동묘를 정당화하면서 그 권력의 당위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반면 국왕은 전쟁의 기억과 황제의 제향을 통해 국왕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다. 어떤 목적이든 대보단은 점차 잊혀져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두 전쟁을 신종 황제에 대한 제사를 통해서 기억하고 기념화하는 의례적 장치였다.



대보단 제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은 제사 대상인 신종의 상징을 최소화하였다는 점이다. 애초 신종 황제를 위한 사당의 건립에서 제단으로 변화한 것은 천자를 하늘에 비유한 것이므로 존귀함을 최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가옥의 형태를 버림으로써 황제가 상시 거주하는 공간적 상징성을 탈락시킨 데에 그 증요성이 있다. 나아가 명나라 체제의 양식을 모방하여 신위를 지방으로 변경함으로써 신종의 구체적 상징물은 제향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형태를 취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종묘와 부딪힐 수 있는 예법상의 문제와 청나라와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소지를 미리 최소화시킨 것이었다. 불가피한 상황에 따른 변례이지만 의례적으로 볼 때 이러한 변화는 분명 의례의 주요 구성 요소인 상징의 결핍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 그림) 1749년(영조 25) 태조와 의종의 병향으로 인해 대보단이 증축된 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보단 평면도

대보단 제향을 당시 다른 국가 제사와 비교할 때 시간적 상징성을 최대화하였다. 사전의 일반적인 제사는 계절적 순환에 기초하여 제향을 지내기 때문에 그 제사가 담고 있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이 탈역사화되어 자연의 순환적 시간에 흡수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대보단은 명나라의 멸망일에 제향일을 맞춤으로써 특정한 사건, 명나라의 패방에 대한 기억과 기념이란 취지를 최대한 살렸다.




영조대에 명나라 태조와 의종이 대보단 제향에 추가된 후 세 황제의 즉위일과 기신일에 거행하는 망배례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제향일과 망배례의 행사에 임난과 호란 때의 충절인 후손을 참여시킴으로써 전쟁의 기념을 넘어서 충절의 이데올로기를 심는 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대보단 제향은 결핍된 공간적 상징을 패망일, 기일 등의 시간적 상징과 봉실 및 경봉각 그리고 황조인 및 충절인으로 대체하면서 전쟁의 경험을 의례화하고,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어 나갔다고 말할 수 있다.


대보단의 제반 사실을 기록한 의궤류의 책은 <<皇壇儀>>, <<皇壇增修儀>>, <<皇壇儀軌>> 등이 있다. <<皇壇儀>>(奎 14308, 2권 2책)는 1747년(영조 23) 영조가 명하여 대보단에 관한 의절을 정리한 책이다. 이때의 대보단은 신종 황제만을 제사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 책을 편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명 태조와 의종을 대보단에 병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단의 증축 및 의절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변화된 상황을 다시 정리한 책이 <<皇壇增修儀>>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는 현재 4 종의 <<皇壇增修儀>>(奎 14310, 14311, 14312, 14314 ; 2권 2책)가 있다. 이 중에서 奎 14312는 표제가 ‘皇壇增修儀’로 되어있으나 내용은 착종되어 있다. 즉, 상권인 제 1책은 <<皇壇儀>>와 동일하고 하권인 제 2책만 두 황제의 병사 이후 변화된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나머지 <<皇壇增修儀>>(奎 14310, 14311, 14314)는 의절 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세 황제 병향 후 변화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의 편집일은 1749년(영조 25) 4월로 되어있다. 한편, <<皇壇儀軌>>는 현재 규장각 도서명이 ‘皇壇增修儀’(古 5123-3)로 되어있지만 표제는 ‘皇壇儀軌’이다. 이 책은 영조대 편찬된 <<皇壇增修儀>>를 전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그 이후 변화된 사실을 추록하고 있다.







이욱, <조선후기 전쟁의 기억과 대보단 제향>, <<종교연구>> 42, 200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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