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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문화

꿈과 종교

by 갈뫼길 2006. 1. 18.

사람에게 꿈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현대인은 밤에도 할 일이 많아 오랜 시간 잠을 자지 못하므로 꿈을 꿀 시간도 그 만큼 적다.

꿈은 종교와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 종교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E.B. Tylor는 종교의 기원을 꿈에서 찾았다.그의 대표적인 학설인 애니미즘은 꿈을 통해서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론이 현재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만 꿈은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서 문학, 예술, 그리고 종교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꿈은 무엇보다도 현실의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준다. 멀리 있는 사람,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내 앞에 데려오기도 하고 가보고 싶은 곳, 잊혀졌던 과거의 시간으로 여행하게 해준다.그러한 꿈들을'개꿈'으로 치부하고 무시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 초월의 욕망에 잠재해 있는안타까움과고통으로 가득찬 현실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사람들에게서꿈은 성현, 조상,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있었던 비밀의 화원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을 귀중하게 여기고 간직하고자 하였다. 기묘사화의 계기가 된 것도 꿈에서 비롯하였고, 조상이 나타나 묘자리를 알려주는 곳도 꿈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곳도 꿈이었다.

우연히 한국토지공사토지박물관에서 펴낸 <<생명의 땅, 역사의 땅-개발과 문화유산의 보본->>(2005)이란 책을 보다 편지 한 장을 발견하였다. 세간에 잘 알려진 안동 정상지구에서 발굴된 이응태 묘에서 출토된 '원이 어머니의 편지'이다. 1586년에 먼저 죽은 남편을 그리며 쓴 이 편지는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어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란 귀절이 눈에 띄었다.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줄 수 있는 곳, 그것도 동영상으로 보여줄 곳은 꿈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언젠가 시간 되면 조선시대 사람들의 꿈을 통해서 종교 생활을 기록하고 싶다는 꿈을 꾸며 편지 글을 적어둔다.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당신이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셨나요?

나와 자식은 어떻게 살라고 당신 먼저 가셨나요?

당신이 나에게 향한 마음은 어떻게 하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와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건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ㅅ니을 향한 마음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 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이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건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서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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