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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

해남 표충사의 제향

by 갈뫼길 2020. 1. 19.

해남 대흥사 내에 위치한 표충사. 

    남도 끝 해남의 대흥사에 가면 '표충사'라는 사당이 있다. 해남 표충사는 휴정(休靜, 호 서산西山, 1520-1604)을 주향(主享)으로 하고 유정(惟政, 호 사명당四溟堂, 1544-1610) 처영(處英, 호 뇌묵雷默, 미상-미상)을 배향한 사당이다. 참고로 밀양 표충사는 사명당을 주ㅇ향을 하고 휴정과 영규(圭)를 모신 사당이다. 10여 년 전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 대흥사에 템플스테이를 하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나도 참여하였다. 그때 두륜산에 더 심취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사찰 내에 유교식 사당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언젠가 한번 자세히 살펴봐야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했다. 그런데 작년에 본격적으로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진설도를 보고 연구를 시작했지만 조선시대 사찰 내 국가 제사의 모습을 찾기란 의외로 어려웠다. 

표충사 내부 모습. 가운데에 휴정, 그 왼편에 유정, 그 오른편에 뇌묵 스님의 영정이다.

   이를 위해 나는 해남 표충사의 제향을 17894월에 있었던 사액(賜額) 시 제향, 같은 해 8월 이후부터 거행된 춘추의 정기제향, 1873년 이후 등장한 다례(茶禮) 등의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 번째 1789년 사액과 사제(賜祭)에서는 국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액호(額號)와 향축(香祝)의 중요성을 살피고, 현전하는 정조의 사제 제문(祭文)을 검토하여 국왕과 승려의 지위를 확인하였다.

   두 번째 춘추 정기제향은 축문(祝文), 제물단자(祭物單子), 진설도(陳設圖), 홀기(笏記) 등의 순서로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 가운데 본고는 현전하는 해남 현감(縣監) 중심의 축문을 정기 제향의 형식으로 간주하기 어렵고, 초헌관으로 임명받은 스님의 이름으로 축문이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편, 나는 제물단자의 자료 가치를 중시하였다. 제물단자는 표충사가 관으로부터 제물을 공급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문서이다. 그리고 나는 제물단자와 진설도의 음식이 서로 맞지 않는 까닭을 관과 사찰에서 제물을 준비하는 이중적 구조로 설명하였다. , 진설도에 보이지만 제물단자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사찰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판단하였다.

    마지막으로 춘추다례시축문(春秋茶禮時祝文)은 고종대 서원 훼철령으로 인해 폐지된 표충사 제향을 다례라는 이름으로 복원하면서 사용한 것으로 술 대신 차가 등장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표충사는 국가와 불교가 만나는 현장이고, 유교와 불교가 상호 교섭하는 융합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승려만으로 구성된 제향에서 이러한 융합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제물의 준비와 진설 속에서 유교와 불교의 상호 교섭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욱, <조선시대 해남 표충사 제향의 설행과 변화>, <<불교학보>> 89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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